믿음과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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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격려믿음과 격려

번역 너깃 57

세계는 모든 문제에 대처할 수 없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이 지구는 매우 위험합니다. 시대는 그 지도자들에게 불확실합니다. 나라들은 당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시점에서 그들은 단순히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리더십에서 잘못된 선택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소유하고 사랑하는 우리는 앞날을 압니다. 그리고 그분은 어떤 난기류, 불확실성 또는 문제를 통해 우리를 확실히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굳게 서서 그분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에게 친절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긍휼이 충만하십니다. 시편 103:8, 11,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풍성하시도다. 그의 자녀들이 실수를 하면 그는 도움을 주고 용서하는 데 자비를 베푸십니다. 미가서 7:18, “주와 같은 신이 누구뇨 인자하기를 기뻐하여 죄악을 사하시나이다”

사탄이 당신이 한 말이나 주님 보시기에 기쁘지 않은 일로 당신을 정죄하려 한다면, 단순히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러면 당신의 믿음이 자라서 당신이 직면한 모든 문제에서 당신을 끌어낼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주 예수님은 그분을 사랑하는 정직한 마음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분의 오심을 기대하는 사람들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의 약속과 이 글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주님의 자녀임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방패, 친구, 구원자이십니다. 많은 일들이 이 나라와 그 백성에게 닥치겠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확실하며 그분은 그분을 잊지 않은 자들과 그분의 추수하는 일을 돕는 자들을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특별한 글 #105

스크롤 # 244 단락 5 – WM. 브랜햄. – 천국의 비전 – 인용문: 여러분 대부분은 내가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내가 주님을 여러 번 실망시켰기 때문에 그분이 나를 기뻐하지 않으실까봐 항상 죽는 것이 두려웠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글쎄요, 어느 날 아침 침대에 누워서 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주 기이한 환상에 사로잡혔습니다. 나는 수천 번 이상을 보았고 한 번도 내 몸을 떠나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에 그것이 특이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나는 사로잡혔습니다. 아내를 보려고 뒤를 돌아보니 아내 옆에 내 몸이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나를 발견했습니다. 천국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들의 무리를 보았다. 그들은 모두 18세에서 21세 정도로 매우 어려 보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백발도 주름도 기형도 없었다. 젊은 여자들은 모두 허리까지 내려온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젊은 남자들은 매우 잘생기고 강인했습니다. 오, 그들이 나를 얼마나 환영했는지. 그들은 나를 껴안고 사랑하는 형제라고 부르며 나를 만나서 반가웠다고 계속 말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할 때 내 옆에 있던 한 사람이 “그들은 당신의 백성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이게 다 브래넘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아니요, 그들은 당신의 개종자입니다. 그런 다음 그는 한 여성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녀를 주님께로 인도했을 때 그녀는 90세였습니다.” 나는 "오 이런, 그리고 이것이 내가 두려워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는 여기서 쉬면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분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직은 너희가 그를 보지 못하나 그가 속히 오시리니 그가 오시면 먼저 너희에게 오시리니 너희가 전한 복음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요 우리는 너희의 종이 되리라” 나는 “이 모든 일에 내가 책임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여러분. 당신은 리더로 태어났습니다.” “모든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합니까? 성 바울은 어떻습니까?” 그는 "그가 자기 일을 책임질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바울이 전한 것과 같은 복음을 전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군중은 "우리는 그것을 쉬고 있습니다. "라고 외쳤습니다.

의견 – {CD #1382, JESUS ​​CARES – 주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시고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며 신성한 섭리에 따라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는 여전히 주님을 찬양할 시간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지상에서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늦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번역이 이루어졌고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너무 늦었습니다). 주님께서 메시지를 가져오실 때 – 여러분은 누가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보고 참으로 봅니다. 들어갈 자들을 오직 주님만이 인도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말할 수 없지만 큰 분리가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마 10:35). 같은 사람들 중 일부는 들어오고 싶어 하지만 너무 늦을 것입니다.

우리는 전에 본 적이 없는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으며 실제로 하나님을 섬기는 때입니다. 사람들은 주위를 둘러보고 지상의 모든 비극과 고난과 고통을 보고 묻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돌보시는가? 그분은 돌보시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돌보지 않습니다. 나의 메시지는 예수님이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지만 그분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죄는 검정, 흰색, 노란색 등 모든 색상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구원은 믿음으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돌보며 믿는 모든 사람에게 기적을 행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종을 돌보십니다. 기도할 때 청할 때보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누구이고 어디에 있든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돌보셨기 때문에 이미 그의 피로 당신의 죄 값을 치르셨습니다. 담대하라 너희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그가 백성을 고치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십자가에 가기도 전에, 그분은 모든 것의 시작과 끝으로 서셨고 또한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용서를 미리 받아들일 사람들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가 모든 인류를 위해 목숨을 버리기 전에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의 모습을 취하셨고, 사람으로 지상에 사셨으며, 돌보셨기 때문에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예수님은 돌보십니다.). 그의 책에서 그는 자신이 구한 모든 것을 열거했습니다. 창세로부터 생명책.

인류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은 마태복음에 기록된 대로 극한까지 시험되었습니다. 마 26:38-42,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내 아버지여 만일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지 아니하면 , 내가 마시지 않으면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누가복음 22장 44절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가기를 거부하고 불순종하는 세대로부터 물러나실 수도 있었지만, 그분은 당신과 나를 돌보셨고 우리의 이름을 믿음으로 생명책에 기록하셨기 때문에 역경에 직면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돌보셨기 때문에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돌보셨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돌보십니다. 예수님은 돌보십니다.

누가복음 7:11-15에서 우리는 아들을 잃은 여자에 대해 읽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길을 건넜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매장을 위해 시체를 따랐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 여자는 과부였고 죽은 사람은 그녀의 외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녀의 상황을 보고 들으셨을 때; 그분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만큼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돌보십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자비로우십니다. 요한복음 11:35을 기억하십시오. “예수께서 우시며”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돌보셨습니다. 나흘이 지난 후에도 그분은 여전히 ​​돌보셨고, 그분이 무덤에 오셔서 그를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예수님은 돌보십니다. 누가복음 23장 43절에 따르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셨지만 여전히 십자가에서 강도의 생명을 함께 돌보셨고, 그 강도는 예수를 주로 부르며 믿음을 전했습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나라를 보고 가로되 주여 주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는 관심이 있으셨기 때문에 대답하셨습니다. 그의 대답에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그분은 도둑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시고 실제로 다른 왕국이 있으며 오늘 낙원에서 그를 보게 될 것이라고 위로하셨습니다. 확실히 도둑은 이제 평화를 얻었고 나중에 성경에서 바울이 1에서 밝혀낸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st 고린도전서 15:55-57,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의 쏘는 것은 죄입니다.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요한복음 19:26-27에서 예수님은 그의 어머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예수님은 돌아가실 때에도 어머니를 돌보셨고 어머니를 요한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그(예수님)가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돌보신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때때로 악마는 당신을 낙담시키기 위해 모든 방법으로 당신을 대적할 것입니다. 당신이 손을 뻗어 그것들을 받을 수만 있다면 당신을 위한 수천 가지 축복도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면 당신은 그들이 주님처럼 미움으로 보상받을 것입니다. 마음에 신성한 사랑을 얻고 충분히 가지고 있다면 선택된 각 사람; 사탄이 당신을 찾을 것입니다. 그는 증오, 낙담, 타협으로 당신에게 보상하고 주님으로부터 당신의 마음을 바꾸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당신을 여기서 내보내는 것은 신성한 사랑입니다. 그 신성한 사랑 없이는 아무도 행성을 떠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성한 사랑 없이는 당신의 믿음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믿음과 그런 신성한 사랑이 섞일 때 웅장하고 강력하게 섞여서 너무 강해져서 하나님의 하얀 빛으로 바뀌고 무지개로 바뀌고 우리는 사라집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은 미움으로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나이, 피부색 또는 국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두를 돌보십니다. 죄는 모든 색을 공격하고 구원은 모든 색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게 될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는 그의 백성을 데려가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는 그들을 꺼낼 것입니다. 나는 이것이 한밤중, 마지막 시간, 빠르고 짧고 위대하고 강력한 작업 기간이라고 믿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뛰어다니고, 방언을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고,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다가가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위해 켜져 있어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신보다 은사를 앞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모아야 하고 당신이 그렇게 할 때 그는 당신을 여기서 데리고 나갈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말하거나 설교한 내용에 화를 내는가에 상관없이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기록부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결코 바꾸지 않을 것이며, 내가 설교하는 것은 기록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사도행전 7:51-60을 보면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변호하고 있을 때 유대인들의 아픈 곳을 쳤고 그들은 그를 죽이기로 결정했습니다. 55절에 “그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스데반이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하니 이것으로 하나님은 스데반이 죽음을 앞둔 스데반에게 격려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스데반을 격려하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 57-58절에서와 같이 스데반은 순식간에 그의 출발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중에 Paul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예수께서 돌보심이라) 그가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그리고 그는 이 말을 하고 잠이 들었다. 이제 이 중요한 순간에 스데반에게서 그리스도의 특성이 발견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누가복음 23장 3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죽인 자들을 돌보셨고 여기서 스데반은 그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돌보시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을 때.

마지막 기도로 사울을 덮은 스데반이 죽은 후에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9:3-18에서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하늘로부터 밝은 빛이 그를 둘러 비추어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대답했습니다. “주님은 누구십니까?” 그러자 대답은 "나는 예수다"였습니다. 스데반은 자신을 미워하고 죽인 자들을 돌보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들을 돌보아 주시는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을 만나셨을 때였습니다. 그는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눈이 먼 사랑에 빠진 사울을 대면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사울에게 그가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지 알려 주십시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예수님은 스데반의 기도를 돌보셨고 그것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께서 사울도 돌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말 관심이 있으십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다른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기 위해 돌보셨기 때문에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관심이 있습니다. 그가 이르시되 내가 결코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리라 그, 예수님이 관심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7장 20절을 공부하십시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예수님은 염려하시므로 사도들의 증거로 그를 믿게 될 우리를 위하여 미리 기도하셨느니라. 예수님은 돌보십니다.

수년 동안 기독교인으로서 나는 죽음이 내 얼굴을 뒤흔들고 희망이 없어 보였고 갑자기 예수님이 도움을 보내시는 꿈에서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그분이 내 입에 예수라는 이름을 넣어 주셨습니다. 승리를 달성하기 위해. 이것은 예수님이 돌보셨고 지금도 돌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돌보시는 당신의 개인적인 삶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보여주신 다양한 방법을 확인하십시오. 당신이 정말로 주님을 사랑하고 관심이 있다면 사탄은 당신을 찾을 것입니다. 단에서. 3:22-26, 느부갓네살의 신상에 절하고 경배하기를 거부한 세 히브리 어린이는 불타는 용광로에 던져져 즉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이가 불 속에 있는 네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돌보셨기 때문에 그런 분이셨습니다. 나는 결코 당신을 떠나거나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돌보심으로 영생을 주셨습니다(요 3:16). 예수님은 우리를 돌보셨기 때문에 우리의 질병과 질병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셨습니다(누가복음 17:19 문둥병자). 예수님은 우리의 매일의 필요와 공급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마 6:26-34). 예수님은 우리의 미래를 돌보십니다. 그래서 택한 자들을 갈라놓는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요한복음 14:1-3; 1st 고린도. 15:51-58 및 1st Thess. 4:13-18): 모두 예수님께서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무엇보다 다음을 돌보십니다. 우리에게 그분의 말씀을 주시고, 그분의 피(생명은 피에 있음)를 주시고, 그분의 성령(그분의 본성)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은 번역을 위한 분리를 목적으로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이 돌보시기 때문에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그분의 말씀은 치유합니다. 프리스비 형제는 하나님의 말씀은 액체 불이라고 말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시며, 관심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 자신, 즉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염려하시기 때문에 요한복음 12장 48절에 기록된 말씀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날에.” 예수님은 돌보십니다. 예수님은 정말 돌보십니다.

(캡스톤 메시지는 선택된 자를 위한 하나님의 돌보심이며 브래넘의 메시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돌본다는 것은 관심이나 관심을 느끼고, 어떤 것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돌보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돌보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과 관심을 보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배려, 믿음, 사랑은 그것을 보여주는 사람의 행동을 요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하신 일에 관심을 가질 때 당신은 누가복음 8장 39절과 47절에 나오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돌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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